아들이삭을 낳은 아브라함(창21;1-8)

 

동양에서는 아들 선호의식이 강하였습니다.

우리 선조들도 자손의 대가 끊어짐을 우려하였고 심지어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결혼도 늦어지고 자녀에 대한 생각도 변하였습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은 노년에 이르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창15;2, 16;1)

그런데 오늘 본문에 그 아내가 임신을 하였고 또 아들을 낳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노년에 자식을 얻은 의미가 뭔지를 살펴보고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중요한 교훈 몇 가지를 보면

1,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1,2)

아브라함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남은 전적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돌보셨고’ ‘행하셨으므로’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라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이 약속이 창18;13-14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실 것을 언급하셨습니다.

또 나쁜 왕이었던 아비멜렉의 집 여인들의 태를 닫으심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창20;17)

시편127;3에는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 태의 열매는 하나님의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는 능치 못함심이 없습니다. 자식을 원하면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한나, 라헬과 같은 여성들의 경우는 하나님이 주신 사실을 체험하였습니다.

옛 사람들은 말하기를 ‘가정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글 읽는 소리가 있어야 한다.’ 라고 하였듯이 가정의 행복에 자녀들이 많은 영향이 됩니다. 자녀들을 낳읍시다.

오늘의 저 출산은 가정과 교회와 국가적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로 양육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3,4)

1) 아브라함은 이아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는 보여주었습니다.(1,2) - 아내인 사래가 낳았는데도 아브라함이 낳았다고 하는 표현이나 ‘여호와께서’ 라는 표현의 반복은 자식이 전적 하나님으로 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식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2) 이름도 하나님이 지어주신대로 불렀습니다.(3) 이삭이란 ‘웃음’의 의미입니다.

아들을 주신다고 하실 때에 부부는 웃었습니다. 좋아서, 또 늦은 나이에 어이가 없어서, 혹은 정말일까? 하는 마음에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웃는 부부에게 ‘왜 웃느냐?’ 는 식의 대화를 하셨습니다. 이후 아브라함은 이 사실대로 아들을 낳아 ‘이삭’ 이라고 하였습니다.

더 세련되고 부르기 좋은 이름이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이삭이라 지었습니다.

자녀의 이름은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합니다. 사무엘도 ‘여호와께 구하였다.’는 뜻입니다.

3) 자식에게 할례를 행하므로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소중히 여겼습니다.(4) -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명령된 성결의식이었습니다.(창17;9-14, 23-24) 그 이후 출생 8일 만에 행하므로 성민의 신분을 분명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의 유아세례는 참 소중한 의식일 것입니다.

3, 아브라함 부부는 아들로 인하여 기뻐하였습니다.(5-8)

그렇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기쁨입니다. 하나님도 그 아들 예수로 인하여 기뻐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 내 기뻐하는 자.’가 아들이었습니다.(마3;17, 막9;7)

고로 자식은 부모를 기쁘게 하여야 하며 부모는 자식을 기뻐 할 만 한 아들, 딸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가정들이 이런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지난주일 유 병근 목사님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