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 있는 나에게(빌4;4-7)

 

 

본문은 ;주 안에서‘로 시작이 됩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한 이들은 ‘주 안에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목자로 성도를 양으로 비유하시어 ‘우리 안에 있는’ 경우와 ‘우리 밖에’ 있는 경우를 말씀하셨습니다.(요10;16) 또 예수님은 자신을 나무로 성도를 가지로 비유하시어 ‘내 안에 거함’과 그렇지 못함을 말씀하셨습니다.(요15;6-7) 주안과 밖은 큰 차이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그 몸이 현재 로마감옥에 투옥되어 있으나 그의 영적 신분은 주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또한 두 신분을 갖는데 이 땅과 천국시민권입니다.(빌3;20)

주안에 있는 신분으로 죄가 많은 이 세상을 살아감은 무척 불안정상태입니다. 그래서 먼저 살다가면서 승리한 사도 바울의 교훈을 따르면서 우리도 승리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1, 항상 기뻐해야 하는 삶을 부탁합니다.(4)

우리가 주안에 있음을 이사야 선지자는 주의 품에 안기어 있다고 하였습니다.(사40;11)

그렇다면 우리는 기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어 있듯이 말입니다.

누군가가 조사를 해보니 ‘두려워 말라’라는 내용의 교훈이 성경에 365번이랍니다. 결국 하나님은 매일 한번씩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 고 하심입니다. 이렇게 부탁하는데도 또 이유를 들이대랴 싶어서 인지 바울은 ‘내가 다시 말하노니’ 하며 두 번이나 강조하였습니다.

2,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보이는 삶을 부탁합니다.(5)

‘관용’은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을 의미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기뻐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남에 대하여 관용함으로 가능합니다.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박해가 극심하여 믿는 자들이 투옥, 순교를 수없이 당할 때입니다. 바울은 이런 박해자들에 대한 관용을 부탁하였는데 오늘 우리에게는 성격이 다른 자들에게 주장의 차이가 있는 자들에게, 심지어 중상 모략하는 자들에게 친절성과 감정적인 절제로 양보와 참은 이해의 미덕을 요구합니다.

3, 염려 대신 기도, 원망 대신 감사를 부탁합니다.(60

염려는 기쁨의 적입니다. 염려에 잡히는 순간 마음이 하나님을 떠납니다. 반면에 세상으로 기울어집니다. 염려는 필요와 위험이 올 때에 일어납니다. 필요와 위험이 세상으로 향할 때에 염려가 되고 하나님을 향할 때에 기도가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세상을 향하면 패배가 되고 하나님을 향하면 축복이 됩니다. 신앙이란 세상을 향하던 모습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도, 간구, 감사로 나누어서 기록하였습니다.

기도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간구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야곱이나 모세, 다윗, 엘리야와 같은 이들은 늘 기도 하던 분들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금식, 굵은 베옷을 입고, 통곡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예수님도 늘 기도하셨으나 때로는 금식, 통곡, 땀이 피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성숙은 간구의 기도로 가능합니다. 단 어떤 기도를 드리건 감사의 기도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품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며 관용을 베풀며 기도와 간구, 감사로 사는 자는 하나님께서 생각과 마음을 늘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삽시다. 할렐루야!

-지난주일 유 병근 목사님 낮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