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10:1-6).


  이원적 사유의 거짓 목자는 양(ego)들을 겉사람으로 이끌어 가지만, 진리인 참 목자는 속사람으로 인도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한다.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진리를 마음과 감정’(ego)으로 측량하려 하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리는 거듭난 자들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적 하나의 진리를 비유로 설명하는 성경을 상대적이며 이원론적 사유로 해석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다시는 배타적인 죄’(십자군의 원정, 마녀사냥 등)를 범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부드럽지 못한 독선적인 교리는 단단하고 강한 시체와 같다(도덕경 76).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大死一番 絶後蘇生, 고후 5:17)라고 하였다. “마음의 새 창조”(6:15)에 의한 새사람(true Self)은 마음과 감정으로 측량키 어려운 새로운 전체성의 영역이며, ‘가로· 세로· 두께라는 3차원의 영역을 초월한 경지이다. 또한 영적인 눈과 귀’(One)를 가지게 되어 고통과 병을 초래하는 이전에 있던 이원성의 옛사람(ego)을 소멸킨다. 따라서 그는 사물의 본래 그러한 모습’(One)을 보기 때문에 불행과 고통 속에서 평정을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