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이와 같을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끝마치지 못할까 걱정하랴?”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일에 차별이 없는 일체 “不二의 진리”(中道)를 깨치고 나면 일체 원리를 모두 성취하여 버렸다는 것이다. 즉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시간이고, 이곳 저곳이 하나의 장소이며, 세계의 모든 일이 곧 자신의 일이고, 우주가 곧 자신의 몸이 되어 차별이 없다. 너와 나의 다름이 없는 “바른 견해”(正見)를 확립하는 것은 바른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 보이시고...”(to reveal his Son to me. 갈 1:16)라고 고백하였다.

 

  그리스도는 자아(ego)를 넘어선 참된 주체인 참자아(true Self)라는 것이  “그리스도가 부활 하셔셔 나에게 나타나셨다”(고전 15:8)는 신앙의 증거이다. 언어의 세계 너머에 있는 “그리스도의 지배”(true Self)는 지적이며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인 ego와 분별지의 독점적인 지배는 끝난 것이다. 또한 그는 “나에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이다”(빌 1:21)라고 하여 자신의 모든 삶의 활동이 그리스도(不二의 진리)에 의해 이루어짐을 인식하였다.

  모든 일에 차별이 없는 일체 “不二의 진리”를 깨치고 나면 일체 원리를 모두 성취하여 버렸다는 것이다. 영적 체험으로 거듭난 자에게는 “不二의 진리”인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일어나는데 반해 그렇지 않은 자의 내면에는 이러한 의식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리학자인 융(C.G.Jung)도 일시적인 자아(ego)와 영원한 실재인 참자아(true Self) 사이를 구분하고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만약 두 사람이 한 집안에서 서로 화목하게 된다면, 그들이 산에게 ‘여기에서 움직여라’라고 말한다면, 산이 움직일 것이니라”(도마복음 48).

 

  여기서 산(山)이라고 하는 것은 ego(ahamkara)의 힘에 의한 여러 가지의 고통스러운 일들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ego와 神性(true Self)을 나타내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한 집안에서 서로 화목하게 된다는 것은 분별적인 ego가 神性(true Self)에 의하여 소멸되는 것이다. ego가 텅 비워졌을 때 고통의 산(山)은 제거되지 않을 수 없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일을 차별하는 어둠의 ego가 소멸되고 “不二의 진리”(中道)인 내면의 神性(true Self)이 빛을 발하게 될 때 일체 원리를 모두 성취하여 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산과 같이 높은 어떠한 고통도 절대 평등한 하나(One)의 세계에서는 치유되지 않을 수 없다. 즉 모든 고통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