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같지 않다면, 반드시 지키지 말아야 한다.”

있음과 없음이 둘이 아닌 진여법계(眞如法界)를 우리가 실제로 바로 깨치면,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인 둘 아닌 세계로 바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기 전에는 불법(佛法)이라고 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즉 모든 차별은 다만 차별없는 것이 아니라면 지킬만한 不二의 영원한 절대 평등한 진리(One)가 아니다. 이원성(二元性)인 ego적인 관점에서는 “있고 없음이 둘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고 모순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One)의 진리의 관점에서는 올바른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눅 13:20-21)고 말씀하셨다.

 

  누룩은 화학 작용을 일으켜 밀가루를 변화시킨다. 밀가루는 누룩을 만나 변화되기 위하여 알알이 분해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不二)는 우리 내면에 있는 둘로 나누는 분별 시비라는 “영적 어둠”(ego)에서 벗어나 아무런 차별이 없고 막힘이 없는 밝음의 “신적인 것”(true Self)의 깨달음으로 변화된 세계이다.

  변화된 不二의 진리로 바탕이 넓은 영안(靈眼)이 열리게 되면 오직 양쪽에만 머물게 되는 분별 시비와 집착이 사라진 절대평등의 경지가 된다. 즉 있음(有)과 없음(無)이 둘이 아닌 진리의 세계가 되어 바깥과 안, 능동성과 수동성을 벗어나 세상의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한결같은 평형을 유지하는 초월적인 삶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던졌다. 그리고 보라, 나는 그것이 불타오를 때까지 잘 지키고 있다”(도마복음 10).

 

  예수님이 가지고 온 불은 이기적인 ego(ahamkara)를 태워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분별 시비와 망상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 不二인 진리의 불, 사랑의 불이 타오르도록 지폈다.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인 하나(One)의 진리”가 아닌 이원성(二元性)인 세계는 지킬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면에 있는 진리의 불은 有와 無, 선과 악 등 분별 시비의 “어둠의 삶”(ego)에 깊이 잠든 인간과 세상을 하나(One)의 “영원한 생명”(true Self)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불은 우리들을 더 이상 “변화하는 현상적인 물결”(ego)이 아니고, 불변하는 본질적인 바다가 되는 “영적인 사람”(true Self)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