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I am.)”(요 8:58)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時空을 초월하여 “창세전에도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진리(One)”(요 17:5)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사랑하신”(요 17:24)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골 1:15) 만물의 근원(道生萬物, 요 1:3)이시며, 시간과 공간에 종속되지 않으므로 “아브라함은 보고 기뻐하였다”(요 8:56). 본래 우리의 본성(true Self)도 다만 그 모양만 달라질 뿐이지 예수와 마찬가지이며(本來是彿), 이것을 불교적으로는 “부모님의 몸을 빌려 태어나기 전 본래의 자리”(父母未生前本來面目)라고 부른다.


   “영적인 예수(One)를 자각한 자”(true Self)에게는 움직임(動)과 멈춤(止)이 단순한 상대적일 뿐, 전혀 차별이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One)이다. 다윗의 후손인 개체적인 예수가 “보편적인 진리”(One)가 될 수가 없는 것은 영원한 생명인 “말씀(道, 요 1:1)”이 아니기 때문이다(고후 5:16). 따라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내 속에 나타내시고...”(갈 1:16)라고 고백하고, “다윗이 主라고 한 그리스도”(눅 20:44)는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true Self)이다.


   부처는 “나는 실제로 성불(成佛)한 지 이미 무량무변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다”(法華經)고 하였다(久遠實成)*. 이러한 경지는 장자(莊子)가 “태어나서 죽기까지 한 순간도 멈추는 바 없이 그 모양을 바꾸지만 본질(true Self)은 그대로다”고 한 자리이며, 공자(孔子)가 “나를 아는 자가 없도다”고 탄식하기도 하고, “하늘만이 나를 아신다”(憲門篇 37장)고 한 “영원한 자리”이다. 유학자인 소강절(邵康節)은 “천지가 나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거한다”(요 14:10)고 하여 “하나(One)의 진리”를 설명하였다.



* “구원실성(久遠實成) 즉 영원한 생명”(神性)은 예수 그리스도와 부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본질적(One)으로 태어나고 죽는 일도 없는 神性(佛性: true Self)이다. “우리의 육체는 망상(妄想)에서 생긴 것”(維摩經) 즉 인연(因緣)이 화합하여 생긴 “거짓 존재”(ego)인 허상(虛相)이지만, 우리의 “참된 생명”(true Self)은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金剛不壞) 실상(요 8:58)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부처는 깨달은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고, 다른 것과 구별하여 부르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빌립은 “예수는 숨겨진 이름이요, 그리스도는 드러난 이름 즉 깨달은 자를 의미하는 보통명사이다”(빌립복음 18)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