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을 주의 말씀에(시119;13-22)

다이빙대에 도전하는 초보 수영 인들은 처음에는 얼마동안 다이빙대만 올려다본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다이빙대에 처음 올라가는 날엔 아주 불안 한 상태로 선답니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대를 발판으로 뛰어 내려 입수하는 것과 포기하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치 다이빙대에 선 사람과 같다고 합니다.

말씀의 바탕, 발판에 서서 승리의 삶을 사느냐? 제 맘대로 되는 대로 사느냐? 입니다.

시편119는 우리의 영적 119 구조 번호와 같습니다. 언제나 펴십시오. 도움을 줄 것입니다.

특히 133절은 우리의 발판이 무엇인지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사람들은 어디에 그 발을 들여 놓고 있을까요?

얼음 중에도 살얼음, 길 중에서 고속도로나 기찻길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습니다,

영적 삶도 동일합니다. ‘악인의 길은 힘찰지라도 넘어진다.’ 고 했는데(욥18;7,8) 사람들은 대게 자신의 발걸음을 다른 신이나 우상에 둡니다. 그러나 ‘다른 신을 따르면 괴로움이 더한 다.’고 하였고.(시16;4) 나무, 돌로 만든 신을 따르지 말라하였습니다. (신28;36) 또 성경은 탐심, 탐욕이 우상이라 하였습니다.(골3;5) 돈이 좋은 것이나 탐욕이 스며들면 우상이 되듯이 명예, 권세, 지식. 인기,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추구할 때에 삼가 주의하여 우리의 걸음이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게 할 것입니다.

2, 내 발을 주의 말씀에 두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내 영혼이 지킬 요소(129), 환한 빛(130) 사모할 것(131)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말씀을 좇아 살았고(창12;4) 욥과 같은 이도 ‘걸음을 말씀에 바로 따랐으며(욥23;11,12)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엉망이었으나 고난 이후 주의 계명을 지키게 되었습니다.(67) 말씀으로 살게 될 때까지 하나님은 훈련의 계획을 취소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부족한 나를 영원한 기업을 이을 후사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독수리가 그 새끼를 훈련함과 같이(신32;11)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훈련하셨으며(신8;3) 욥, 요셉의 고생이나 석학 이 어령 교수의 회심도 이런 차원일 것입니다.

3, 오늘 여러분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주의 말씀에 서 있으신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영생의 말씀’ 이시므로 자신은 다른데 한 눈 팔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예수님 외는 갈 데가 없습니다. 이것이 곧 그분의 말씀에 나의 삶을 세우는 것입니다.

말씀 중심의 삶은 곧 예수 중심의 삶입니다. 그럼에도 말씀을 경하게 취급을 하고 일반사람들처럼 세상에서의 제일을 추구하고 산다면 위험합니다. 혹시 세상에서 제법 뭔가 이루었다 하더라도 인생의 종착역에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래위에 생을 건축하지 말라하셨습니다. 반드시 반석위에 세우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본문의 기자는 이런 어려운 때에 말씀을 외면하는 자들을 보고 엉엉 울었다고 하였습니다.(136) 일찍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의 명령을 다 준행 하리이다.’ 하였습니다.(출24;3,7) 주님의 말씀은 다 의로운즉 은이나 금보다 더 지키라 하셨습니다.(잠8;8,10) 오늘 사회는 말씀에 귀를 막고 일부러 듣지 않으려 합니다. 독생자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은 말씀을 거역한 인간들의 죄 탓입니다. 우리가 또 불순종을 한다면 예수의 십자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씀의 발판위에 나의 발을 굳게 세웁시다.(잠3;1-10, 4;10-13을 읽읍시다.)

-지난주일 유 병근 목사님 낮 설교 중에서-